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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











생에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용서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품고

나는 그 억겁을 견뎌왔다.









 "나는... 당신한테 미겔인가요?"
 "... ..."

 


  속이 울렁거렸다.


  며칠 째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도 못했고, 빈 속에 한 일이라곤 끊임없이 안을 게워내고, 억지로 약을 먹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코피를 흘리는 일들 뿐이었다. 이렇게나 망가진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몸이 엉망이었다. 정신이 망가져 있을 때도 몸은 멀쩡했는데, 이제는 몸마저 따라주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놓아버리고 싶은 정신을 어설프게 붕대가 감긴 손을 꾹 쥐어 붙잡았다. 아물지 못한 상처가 터져 핏물이 새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채 빼지 못하고 어딘가에 박혀 있는 유리조각이 깊숙이, 제 피부를 파고 든 것 같기도 했다.


  제가 아직 내리지 못한 답을 바라듯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상대를 바라보지 않으니 변명은 다행스럽게도 쉽게 입밖으로 줄줄 흘러나왔다. 아득한 정신을 붙잡은 게, 제 손끝에서 온 몸을 관통하는 고통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가짜도 진짜도 아닌, 미겔 세르빌로로... 보고 싶어요. ...이게 답이 될까요."

 


  이 말이 눈앞의 남자를 향한 기만임을 알고 있었다. 가짜도 진짜도 아닌, 이라니. 결국 질문에 대한 회피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그의미드나잇이라는 남자의 욕심이기도 했다. 이전에 잃은 사람들을, 그리고 또 잃어버린 눈앞의 남자를 곁에 두고 싶다는.


  제 뺨에 손이 닿아오고, 짓씹는 입술을 지적하는 손가락을 눌렀다 떼어내는 것에 숨을 멈추었다. 이전에 이따금 닿았던 느낌과 같으면서도 다른, 낯선 기분에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제가 오자마자 그 사람과 작품이었던 감상과 작품을 만들었다는 감상을 서로 나누라고 했던걸 욕하고 싶네요. 당신이 날 미겔 세르빌로로 생각하면 해선 안될말이죠."

 


    날 어떻게 받아들이건 자유지만, 그런식의 말에는 전 속상했답니다.



'세르빌로씨랑 에디슨씨랑 대화 나누면 되겠네.'
 '한 명은 작품이 된 감상 좀 들려주고. 다른 한 명은 작품 창작 소감 좀 들려주고.'



  제가 한 말이었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좋은 말도 아니었고, 더욱이 죽은 사람에게 할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죽고 싶어서 죽은 것도 아닌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누구보다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었던 이에게라면 절대로. 하지만,


 "...매몰차게 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당신이 저를 싫어했으면 했어요. 그렇게 하면, 그래서 당신이 절 싫어하면 저절로 거리를 둘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이제 더 이상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누군가는 상처받고 책임지는 것이 싫어 사람과 거리를 둔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에 겁쟁이라고, 책임지는 걸 무서워하는 유약한 사람이라며 그를 매도했었다. 어우스운 이야기였다.


  결국 진짜 겁쟁이는 자기 자신이면서.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다. 더는 함께 지낸 이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누군가가 죽는 것에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 정이 깊었다. 그 정이 너무 깊어서, 그것이 제 목을 조르는 것도 모른 채 그곳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래서 매번 흔들렸고, 힘들어했다.


  ...더는 힘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초라한 나라도, 봐주실 건가요?'
 '제겐 무엇이든 살아있다는 존재 자체가 빛나보인답니다. 제가 보는 가치는 그거 뿐이에요.'

 


  아이는 단맛을 한 번 맛보고 나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것을 갈구하게 된다. 미겔 세르빌로라는 남자의 말은 달았다. 단 한 번이었지만, 그는 제게 베풀어진 달콤한 온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 허상을, 밀어낼 수 없었다.


  툭, 

 

 바닥으로 뜨거운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힘겹게 고개를 든 그의 두 뺨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잔뜩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가 눈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미겔씨."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나쁜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사과해야만 한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또 다시 후회하기 전에.


  다시는 용서를 구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미안해요.

생을 돌아 처음으로 꺼낸 나의 진심이

당신에게 닿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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