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비람
2018. 9. 16. 12:48
"사장님. 병원으로부터 연락 왔습니다."
"뭐래요?"
"신장, 심장, 위, 각막 가능하답니다."
흐음, 하고 해운은 턱을 괸 채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화면 위에 떠오르는 액수를 확인한 그가 책상 위 책꽂이에서 서류를 꺼내 계산기에 나타난 액수와 서류를 비교하고는 한숨을 쉰다.
"2억 정도 모자르네요."
"병원 측에서는 이것 말고는 더 뺄 수 있는 게 없다고 합니다."
"…흐음. 최씨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알기로 운동 선수라고."
해운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톡, 톡. 책상을 가볍게 두드린 그가 서류를 덮었다.
"사람이 살면서 간은 1/3만 있어도 괜찮잖아요?"
"그럼…."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데려와요. 아버지 빚은 또 아들이 갚아줘야 하지 않겠어요?"
서늘하게 웃는 그의 미소에 남자는 가볍게 목례한 후 문을 닫고 사라진다. 방 안에는 고요가 찾아오고, 해운은 드르륵, 서랍을 열었다. 깨진 액자를 조심스럽게 꺼내든 그가 액자 속 가족 사진을 바라본다.
"아버지 빚은 아들이 갚는다고 하지만,"
해운의 시선이 차갑게 식은 채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쿨럭…, 문해운, 어떻게, 어떻게 네가…!'
배신감에 휩싸인 채 소리치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던 늙은 손, 코끝을 찌르던 핏비린내.
'그러게, 왜 하필 저였어요.'
"아들한테 진 빚은 본인이 끝까지 책임져야죠. 그렇죠?"
.
.
.
해운은 붉게 물든 고무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마스크를 내린 그가 짧게 숨을 토해내고는 수술대 위에, 이제는 시체보다는 인육에 가까워져 버린 것을 바라보았다. 있어야 할 것이 모두 사라지고 텅텅 비어버린 것을 덤덤하게 훑어본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예. 방금 적출 끝내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아마 2시간 이내로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럼요. 제 실력 잘 알지 않습니까."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끝마친 해운은 수술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가 깨끗이 비어있는 남자의 얼굴부터, 이제는 텅 비어버린 몸, 그리고 발끝까지 느릿하게 훑었다. 헛구역질을 하며 밖으로 뛰쳐나가던 부하 직원을 떠올리며 그것을 바라보지만,
일말의 동정심도, 죄책감도, 아무런 감정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저, 인육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뿐.
익숙해져버렸고, 무뎌져 버렸다. 눈앞의 저것은 해운에게 그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두 손으로 부모의 것을 꺼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해져 버린 시체, 익숙해져 버린 피비린내, 익숙해져 버린 죽음,
누구의?
타
인
그렇다면,
익숙할 리가 없잖아¿
누구의?
그
것
은
나?
나
의
죽
음
그렇지.
타인이 아닌, 나, 나의 죽음, 그것은
익
숙
할
리
가
없
잖
아
¿